말레이시아 언어는 말레이어, 중국어, 타밀어, 아랍어 등 최소 7개다. 하지만 이 모든 언어를 용광로처럼 하나로 녹여주는 것이 바로 영어다. 이곳의 언어가 복잡해진 것은 영국의 식민지 정책 탓이다. 사회의 이면은 항상 이렇듯 지정학적(Geopolitical) 의미를 띤다.
말레이시아 언어 구성
말레이시아 언어를 살피려면 먼저 인종 구성 또는 민족 구성을 살펴야 한다. 인터넷에서는 많은 잘못된 정보가 떠돌아 다니는데, 말레이시아 정부의 2015년 인구통계 수치가 가장 정확할 것이다.
이에 따르면 말레이시아에는 본토인(61.8%),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21.4%, 인도계 말레이시아인 6.4%, 외국인 9.6%가 살고 있다.
생각보다 말레이시아인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유는 알다시피 영국의 식민 정책 탓이다.
영국은 말레이시아인이 그렇게 성실하지 않다고 판단해 중국 남쪽 노동자들을 주석 광산으로 불러들였다. 이후 중국인들끼리 큰 싸움이 일어나고 분란이 많자, 고무 농장에는 인도의 타밀 노동자들을 불러 모았다. 이후 근대 들어 예멘 등 중동 사람들이 스스로 많이 이주해와 사회를 이루고 있다.
이 덕분에 말레이시아에는 바하사 말레이어, 중국어(광동성어, 복건성어, 객가어, 만다린어), 인도어(타밀어,힌두어), 아랍어 등이 쓰이며 있고 이것은 공용어로 말레이시아 영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여러 토종 말레이인을 통합하는 바하사 말레이
말레이어는 바하사어로 불리는데, 바하사어는 두 종류가 있다. 바하사 말레이(Bahasa Melayu 또는 Bahasa Malay)와 바하사 인도네시아(Bahasa Indonesia)가 그것이다. 두 언어는 서로 비슷해 80% 이상 유사하다고 한다.
이 말레이어는 말레이 원주민들의 언어이다. 위에서 말레이 본토인이 61.8%라고 편의상 설명했지만, 실제로는 정부 통계로 또 다른 분류법이 있다. 둘 다 본토인, 원주민이지만, 보르네오 섬에 사는 원주민들은 다른 용어가 있다.
본토 원주민은 말레이의 50.1%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이 사람 숫자면이나 정치적 파워, 경제적 파워 등 모든 것에서 다른 원주민들을 앞선다. 나머지 11.7%의 원주민은 크게 3종류로 나눠진다. Orang Asli, Dayak, Anak Negeri가 그들이다.
오랑우탄의 Orang은 사람을 뜻한다. 따라서 Asli(원래의)를 붙인 인종은 원래의 사람이란 뜻이다. 오랑 아슬리 그룹만 18개 하위 그룹으로 나눠질 정도로 복잡하다. 아무튼 크게 3종류로 나눠진 원주민들이 보르네오섬의 사라왁과 사바 주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즉 반도에 사는 말레이인과 섬에 사는 말레인은 조금 다르게 생겼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말레이시아는 연방을 구성하면서 반도는 거의 하나의 국가처럼 움직이지만, 보르네오섬에 있는 사바주와 사라왁주는 주 정부의 힘이 독립 국가처럼 막강하다. 이민 규정도 다르고, 학생 비자도 다르고, 세금도 다르다.
그러나 이들을 다 묶어주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말레이어이다. 말레이시아 국제학교에서 다른 언어는 다 무시하고 안 가르쳐도 되는데 바하사는 필수이다.
말레이어는 한국인이 6개월이면 생활 말레이어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솔직히 제대로 배워보지 못해서 알 수는 없다. 그만큼 쉽다는 얘기는 여러 차례 들었다. 심지어 영어권 사람들에게도 쉽다고 한다. 불어식 어순, 즉 Something new처럼 형용사가 명사를 뒤에서 수식해주는 것이 많아서다. 위에 Orang Asli도 명사+형용사 구조이다.
말레이시아 중국어, 여러 방언에도 통합 언어는 만다린
말레이시아 중국어는 하나가 아니다. 진짜 여러 개의 지방 방언이 사용되고 있어 중국계 말레이시안 입장에선 중국인들끼리는 만다린(중국 표준어, 보통화)으로 통일해야지 서로 대화가 가능하다. 나이든 사람들보다 교육을 받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만다린으로 대화가 가능하다. 하지만 그럴 바에는 서로 영어로 통화하고 만다.
아무튼 말레이시아 중국어는 최소한 4개가 통용된다. 호켄, 광둥, 하카, 만다린 등이다.
첫째, 페낭에서는 호켄어(복건성 언어)가 절대 다수이다. 페낭은 2020년대 이후 말레이계가 늘어나 페낭주의 제 1 인종으로 올라섰지만 그 이전까지는 중국계가 최다 인종이었고, 그 다수를 복건성 후예들이 차지했다.
만다린의 성조(음의 고저)는 4성이지만 호켄어는 6성이다. 또한 읽는 법이 완전히 다르다. 가령 똑같은 한자로 성(Surname)을 공유한다해도 읽는 법이 달라, 영어로만 성을 쓸 때는 다른 한문처럼 보인다.
둘째, 쿠알라룸푸르는 광둥어(광동성 언어)가 대다수이고 하카어(객가어 客家)도 섞여 있다. 광둥어는 홍콩사람들의 언어일 정도로 광범위하게 쓰여지는 중국 남부 언어이다. 성조가 9개나 되어 높낮이의 변화가 심하다.
셋째, 교육받은 젊은이들과 비 중국계는 만다린을 배운다. 그들은 자라면서 중국의 성장하는 힘을 보았고, 한국에서 중국어 배우기 붐처럼 장차 사회생활을 하려면 만다린어를 배워두면 좋겠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표준어인 힌디어를 누르는 말레이시아 타밀어
타밀족은 인도의 남쪽과 스리랑카에 사는 드라비다 계통의 민족이다. 매우 까무잡잡해서 백인종인 이란이 인도를 점령했을 때 생긴 카스트제도 아래에서 매우 천대받았다. 피부 색깔이 더 흴수록 계급이 올라가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천대를 이기지 못할 때 영국이 고무 농장 등으로 부를 때 기꺼이 달려온 타밀족이 사용한 언어다.
한국어와 최소 1800개 이상의 공통어가 있는데, 엄마, 아빠, 니, 나 등 너무나 유사해서 놀랄 수 있다.
필자가 역사를 찾아봤을 때 타밀족은 이란인의 박해를 피해 일본과 신라로 도망왔고, 벼농사 등 선진적인 문물을 이식하며 신라에서는 왕으로 추대된 것으로 보인다. 신라 궁중어가 타밀어가 됐고, 부부가 모두 타밀인 경우 성골, 이후 한쪽만 타밀이면 성골로 불렸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석탈해, 이사금 등 도저히 알 수 없는 표현들이 타밀족에서는 지도자 급 직책(title) 이름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학계에서는 이런 것을 파헤쳐봤자 크게 영예스런 일이 아니라고 봤을 것이다. 지금도 타밀족은 동남아시아를 떠돌며 불쌍한 삶은 영위하고 있는 사람이 다수다.
어쨌든 신라 궁중어는 통일 신라 시대를 거치면서 한국어에 완전히 뿌리를 내려서 지금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래서 언어적 유사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마치 영국 왕실이 1066년 프랑스 계통의 노르망 왕조로 바뀌면서 1399년 헨리 4세가 왕위에 오를 때까지, 프랑스어가 궁중언어로 사용되면서 영어에 깊게 뿌리를 내린 것과 같은 맥락이다.
아무튼 타밀어는 다수의 인도계 말레이시아인이 사용하기에 인도계 학교에서는 타밀어가 공식적으로 채택되어 있다. 표준어인 힌두어가 차지해야할 위치를 타밀어가 차지하고 있을 만큼 다수라는 뜻일 것이다.
영어 보다 훨씬 먼저 와있던 말레이시아 아랍어
말레이시아 아랍어는 이미 13세기 말라카(Malacca) 왕국이 세워져 있을 때 예멘 상인이 들어와 소개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말라카 왕국이 네덜란드에 식민지가 되는 1641년까지 말라카는 이슬람화됐다.
물론 지금 말레이인들은 모두 그 당시의 아랍어를 잊었겠지만, 요즘도 쿠란을 읽을 때나 회사명, 가게 이름 등에 아랍어가 섞인 곳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리고 현대에 들어서는 예맨 등 중동 사람들이 여전히 쿠알라룸푸르를 중심으로 많이 이주해와서 살고 있다. 말레이시아에 외국인이 9.6%나 사는 것은 인도네시아 출신 하녀(maid), 인도 펀잡주 출신 경비뿐만 아니라 수많은 아랍인들도 포함된다. 곳곳에 파키스탄 식당, 예멘 식당이 그것을 말해준다.
또한 말레이시아는 이슬람 금융의 허브이다. 아랍 금융회사들이 많이 지사를 내고 활동할 수밖에 없다.
언어와 민족의 Melting Pot, 말레이시아 영어
말레이시아 언어를 알아보고 있는데, 지금까지 말레이시아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말레이어 1개, 중국어 최소 4개, 인도어 2개, 아랍어 1개 등 총 7개라는 것을 설명했다. 무지갯빛 색깔 수이다.
이 무지개를 하나로 혼합하는 것은 말레이시아 영어다. 서로 영어가 아니면 소통하기 힘들다.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팔 때도, 랩탑 컴퓨터가 고장이 나서 고치려고 할 때도, 에어컨디셔너 정기 수리할 때도 영어 아니면 서로 대화할 수 없다. 그래서 영어의 중요성이 이 나라에서도 크다.
비록 발음이 후지다고 빈정거림의 대상이 되는 말레이시아 영어이지만 말레이시아 내에서 영어는 권력이다. 영어를 잘 하면 보다 나은(decent) 직업을 구할 수 있다. 그리고 회사에서도 보다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다.
이런 동기부여로 인해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생각보다 영어를 훨씬 잘한다. 홍콩에서는 큰 길에서 한 걸음만 골목으로 들어가면 광둥어 세상이 되고 영어가 통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에서는 70, 80대 할머니가 허름한 호커에서 영자 신문을 보는 광경을 흔하게 목격할 수 있다.
적지 않은 국제학교 학부모들은 말레이시아 영어를 우습게 보고 말레이시아에 오는 것을 주저했겠지만 현실은 영어를 제일 못하는 나라가 한국, 중국, 홍콩, 일본이다. 영어보충반을 가면 항상 이들이 보인다.
말레이시아는 대학도 영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논문도 영어로 쓸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우리 생각과 다르게 이곳의 최고 대학인 말라야대학, 즉 UM(Universiti Malaya, 영어 University of Malaya)은 QS대학평가에서 한국의 명문대를 대부분 누르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저 표는 2023년 QS 아시아대학 랭킹이다. 이를 보면 한국의 KAIST(8위)만이 바로 뒤인 9위를 차지하고 있는 말라야대학을 앞섰을 뿐 연세대(12위), 고려대(15위), 서울대(17위)는 모두 말라야대학 보다 순위가 뒤진다. 도쿄대도 11위로서 말라야대학에 밀렸다. 말레이시아 영어를 우습게 보면 안된다.
한국인이라면 쉽게 동의하기 쉽지 않지만 그만큼 영어의 힘이 중요하다고 하니 영어 못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힘든 세상이다.
이상으로 말레이시아 언어를 살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