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학교를 다니다 보면 매일 영어 단어와의 전쟁이다. 단어를 모르면 수업을 따라 가기 힘들다. 특히 과학, 사회 시간이 힘들어진다. 영어 시간은 말할 필요도 없고 말이다. 아들이 국제학교 교내 스펠링 비 대회에서 2년 연속 우승, 준우승을 차지했다. 비결을 알아보자.
스펠링 비 영어 단어 대회란?
spelling bee 대회는 영어 단어를 듣고 스펠링을 대답하는 대회이다. 원래 미국에서 매년 열리는 전국 단위의 스펠링 맞히기 대회이다. 1925년 미국 켄터키주 루이스빌의 한 신문사가 만든 대회가 기원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인도계 미국인이 압도적인 기량을 발휘하면서 ‘스펠링 비 우승자 = 인도계’라는 공식을 쓸 정도로 유명하다.
국제학교 교내 스펠링 비 대회는?
이런 전통의 스펠링 비 대회를 아들이 다니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영국식 국제학교는 학교 내에서 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국제학교를 1학년(Y1)부터 다닌 아들로서는 지난해 처음 이런 대회에 나갔다.
지난해에는 Y7, Y8만 참가하는 대회였고, 올해는 Y7과 Y8을 나눴다. 저학년과 고학년은 이같은 대회가 없다.
지난해 아들이 Y7으로서 출전해 Y8 형과 승부가 끝나지 않는 연장전을 거듭해 공동 우승으로 끝난 까닭에 Y7과 Y8을 올해에는 나눈 것 같았다.
이 학교는 한 학년에 6반씩 있는 규모가 큰 학교이다. 따라서 교내 스펠링 비 예선을 치른 뒤 본선 진출자 수명을 가려 선생님이 영어 단어를 읽어주면 스펠링을 맞히는 경연을 펼쳤다.
또하나 재미있는 점은 이 학교에는 인도계가 제법 많이 다닌다. 주로 중국계 말레이시안이 많지만 인도계 말레이시안도 느낌상 10% 이상 된다. 따라서 미국에서 스펠링 비 대회를 인도계가 휩쓴 것처럼 여기서도 그럴 법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
대회 방식에 대한 유감
교내 스펠링 비는 출제될 영어 단어 600개를 대회 전날 오후 7시 정도 배포한다. 본선에 진출하는 학생들만 대상이다.
나는 이 방식이 사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학생들에게 영단어를 공부시킬 요량이라면 600개의 영단어를 아예 일찌감치 한 달전에 배포하여 1주일 전 정도에 예선을 치르면 많은 학생들이 3주간 공부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스스로 노력한 아이들은 보다 좋은 성적을 낼 것이다.
이 방식이 아이들의 실력을 구분하기 어렵다면 킬러 문항, 즉 200개 정도의 어려운 영단어를 지금처럼 대회 하루 전날 뿌린다면 충분히 실력을 가릴 것이다.
아무튼 현재의 방식은 영어 단어를 이미 많이 축적해 놓은 선수들에게 유리하다.
평소 영어 단어 실력은 Wordly wise에서부터
아들은 3년 전부터 비교적 꾸준히 영단어 실력을 키우기 위해 Wordly wise를 공부하고 있다. 필자가 봤을 때는 아주 잘 만들어진 교재같다. 소싯적에 ‘Vocaburary 33000’을 공부하던 시절에는 책에서 단어를 보고, 문장 몇 개 속에서의 역할을 보고 단순 무식하게 외웠다면, Wordly wise는 인지과학적으로 만들어진 느낌이다.
눈으로 보고, 여러 차례 용례가 반복되고, 소리로 듣고, 말로 그 단어를 말하는 방식이었다. 눈, 귀, 손이 공조되는 방식이니 기존 방식보다 훨씬 암기에 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한 단어의 숙지 여부를 최소한 5번 이상 체크한다. 예를 들면 boy라는 단어가 나오면, 그것을 원어민의 발음으로 단어와 뜻을 듣고, 바로 이어서 참, 거짓 문제로 체크한다. 이후 사지선다형으로 네차례 문제를 풀고, 마지막으로는 독해로 이어진다. 이렇듯 워드리 와이즈 장점은 매우 많다.
Wordly wise는 한 학년 분량에 총 20개 챕터가 있는데, 한 챕터는 20개 미만의 단어로 이뤄진다.
현재 Y8인 아들은 G8(미국 8학년, 영국 Y9) 진도를 나가고 있다. 주로 주말에 토요일, 일요일 각각 최대 30분씩 공부하며 한 챕터를 끝내고 있으니 대략 20주면 한 학년 영단어 분량이 끝난다.
Wordly wise 단점
워드리 와이즈는 사실 한국인과 같은 외국인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원래는 매우 큰 장점인데 영어가 짧은 외국인에게는 진입장벽으로 작용하는 단점이다. 무엇이냐면 영어로 단어의 뜻을 설명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제학교 학생들에게는 역으로 좋은 점도 된다. 사실 워드리 와이즈가 미국인을 위해서 만들어진 책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필자가 카투사(KATUSA)로 근무할 때 한 미군한테 두가지 점에서 놀랐던 적이 있다. 하사 승진 시험을 쳐야하는 그는 당직을 몰아서 자원해서 했는데, 하루는 같이 당직을 하게 됐다. 그는 밤새 공부를 하는 경이적인 체력을 보여줬다. 이게 첫번째 놀람이다.
놀람은 그가 영단어를 공부하고 있는데, 매우 쉬운 단어를 외우고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놀랐다. 미국인도 단어를 외어야 하겠지만 의외로 쉬운 단어들을 승진 시험에서 나오다고 하니 놀라웠다.
워드리 와이즈 학습법
미국학교 다니던 G4 시절에 우리는 처음 이 같은 책이 있다는 사실을 지인으로부터 듣고 알았다. 따라서 G1부터 차례 차례 밟아서 올라왔다. 그리고 G7까지는 어려움이 없었다. 그래서 한번은 G12부터 내려와 보자고 시작했다가 몇일 못하고 포기했다. 너무 어려워서다.
아마도 내가 카투사 시절 미군이 공부하던 단어도 이제 생각해보면 쉬운 단어만 보고 콧방귀를 끼었을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어려운 단어가 나오는데 그것을 못 보고, 코웃음 쳤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겠다.
G8부터는 제법 어려워지기 때문에 이제는 조금 긴장하면서 공부하고 있다는 게 아내의 얘기이다.
마무리
아들 자랑이라고 들릴 수 있어 이 얘기를 할까말까 망설이다가 한다. 아들은 지난해 교내 스펠링 비에서 우승했고, 그것도 상급반 학생과 동률로 공동우승했고, 올해는 단일 학년 대회인데도 준우승에 그쳤다.
올해 우승자는 인도네시아 학생이다. 그는 수학대회에서 글로벌 6위까지 하는 수학 천재이다. 이 아이가 낀 수학팀(4명)은 2022년 말레이시아 영국계 국제학교 FOBISIA 수학 대회 우승팀이다. 지난해 대회가 열린 후 전학갔던 아들은 이 최강 팀에 균열을 일으키며, 3명으로 줄어든 학교 대표팀에 올해 선발됐다. 그리고 KLJMC라는 대회에 나가 한 학년에 걸린 전체 메달 3분의 2를 휩쓰는데 일조했다. 수학, 영어, 과학, 컴퓨터사이언스에 자부심이 강한 아들도 수학 만큼은 이 친구한테 고개를 숙이고 들어간다.
이제 말하려는 부분이 나온다. 이런 수학천재도 지난해 아들이 스펠링 비 챔피언이 되는 것을 보고 샘이 났던 모양이다. 오후 7시 600개 단어가 발표되자 6시간 동안 외우고 밤 늦게 잤다고 우승후 자랑했다고 한다. 아들은 겨우 2시간밖에 공부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제발 곡해하지 마시라. ‘2시간 밖에’라는 변명을 하려는 게 아니라 천재도 밤새 공부한다는 것에 포인트가 있다.
아들에게는 너무나 부족한 근성이다. 하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영어에는 두가지 표현이 모두 참(TRUE)인 역설적인 것이 있다. ‘People change.’ ‘People are hard to change.’ 정반대의 뜻인데도 통용되는 것을 보면 사람은 변하기도 하고, 변하지 않기도 하는 것 같다.
확률은 ‘좋게 변한다’ ‘안 좋게 변한다’ ‘안 변한다’ 중의 하나이다. 좋게 변할 확률이 3분의 1밖에 안되다니. 쉽지 않은 일이다.
아무튼 결론은 단어를 공부하고 싶으면 ‘워드리 와이즈’가 최고라는 얘기이다.